2009년 11월 16일
한국판 만화 분서갱유 사건
어쩌면 초라하게나마 연명하던 한국 만화의 명줄을 일거에 따 버린 사건이 1972년 2월 1일에 벌어진 비극이 아닐까.
(전략)
각설하고, <한국 애니메이션사를 정리해주마!> 두 번째 이야기는 만화 이야기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정리한답시고 여기 저기를 쑤시고 치고 박고 하다가 하필이면 1970년 초반의 만화 사료가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비록 당시 만화사료들이 서민들의 대변마감재료로 항상 일정량이 소비되긴 했지만, 그토록 집중적이고 대량으로 사라져버린 연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하고 디비 파들어 갔더니... 놀랍게도 한 소년의 자살 사건이 거기 있었다. 만화와 관련한 한 소년의 자살이 몰고 왔던 '한국 만화판 분서갱유 (焚書坑儒) 사건'...
때는, 1972년 2월 1일. 겨울비가 심하게 몰아치던 날. 서울에서 한국 만화계를 회까닥 뒤엎을 사건이 하나 터졌다.
동해안에 큰 해일까지 겹쳤던 바로 그날 저녁, 서울시 성동구 하왕십리동에서 국민학교 6학년 남자 어린이가 자살을 해버린 것이다.
결코 흔한 일은 아니지만 더욱 큰 문제는 그 아이의 자살 이유였다.
내성적이던 소년은 열렬한 만화광으로 평소 만화 속의 주인공들이 마음대로 죽었다 살아나는 것에 대해 동경을 품고 있었는데 그 날, 자신도 분명 그러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목을 메고 자살을 해버린 것이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자살 시도 세 번째만의 일이었다. 소년을 그렇게 죽음으로 몰고 간 원흉으로 지목된 만화는 <철인 삼국지>. 신문 기사로만 남은 이 만화는 삼국지를 모태로 한 공상과학 만화 였던 모양이다.
소년이 특히 좋아했던 이 만화 속에는, 주인공 중의 하나인 장비로 추측되는 인물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내용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작가의 실수인지 원래 스토리가 그런 지는 알 길이 없다. (왜 자꾸 이따구로 말을 애매하게 하냐고? 그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도대체 만화를 구해볼 수가 있어야 뭐라고 이야기할 것 아닌가)
암튼 만화 속의 주인공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내용에 흥미를 느낀 소년의 이름은 정XX (당시 12살). 중학교 무시험 배정을 며칠 안 남겨 두었던 소년은 누나와 밀린 방학숙제를 마치고 만화를 보다 그런 어이 없는 짓을 저질렀던 것인데 이 사건은 그 가족만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 사건은 해일이 되어 우리 만화계를 덮치고 말았다. 사건이 있던 바로 그날 밤의 겨울폭풍 처럼.
당시 대본소들은 <한국 아동도서 보급협회>가 마련한 '아동도서 정화계획' 이라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규정에 따르고 있었는데, 이 사건이 터진 이후 만화와 관련한 여론이 급격하게 험악해지자 당국은 이 규정을 내세워 소년이 단골로 다니던 학교 앞 만화가게 주인들을 구속하고 만화가, 만화 출판사 사장과 만화 유통업자들을 줄줄이 엮어갔다.
백번 천번 양보해 만화가는 그렇다치더라도, 우째 만화가게 주인까지 잡아가버렸냐...
하여간, 만화 창작과 관련되어 69명이 고발 조치되었고, 국내 58개의 만화 출판사 중 절반 이상이 등록 취소되었다. 대본소를 대상으로 한 하룻밤 단속으로 2천여권이 넘는 만화책이 압수당했다.
5원짜리 만화책을 몇 권 보면 표딱지를 나눠주고 그걸 가지고 오면 텔레비전으로 <타이거 마스크>니 <황금박쥐>니 <마린보이>니 하는 만화영화나 박치기왕 김일이 안토니오 이노끼나 브러쉬 같은 외국의 레슬러들을 혼내주는 '프로 레슬링'을 보여주던 만화가게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이 있을 게다. 만화의 사신(死神)은 그들 역시 용서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그렇게 텔레비전을 보여준 혐의로 70여명의 대본업소 주인이 즉심에 넘겨졌다. 1년 전 만화가게를 정리하고 쌀집을 운영하던 아저씨도 아이들의 '증언'에 의해 붙잡혀가는 일도 벌어졌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예나 지금이나 미래를 내다보는 탁견과 나름의 문화적 입장은 조또 엄꼬, 그저 우루루 몰려다니는 우리 언론들은 너나없이 지면을 할애해 '어린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불량만화'에 대한 비판 기사를 실었다. 사회 저명 인사들 역시 한 입으로 만화를 맹비난했다.
소년이 다니던 학교를 중심으로 <나쁜 만화 안 보기 운동> 이 일어났고, 학교별로 궐기대회를 열어 '절대로 만화가게에 가지 않는다', '만화 보는 돈으로 어린이 저금을 한다'는 등의 결의를 다지며 집단으로 만화책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자살의 직접적 원인으로 알려진 만화 <철인삼국지>와 작가는 그 비난과 처벌의 최우선 대상이었음은 물론이고.
여파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방송에서는 만화영화 방영을 대거 줄여 나갔다. 아침 방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만화영화가 90% 이상 없어져 버렸는데, MBC의 경우, <뽀빠이> 단 한 편만을 남겨두고 만화영화가 모두 종영이 될 정도였다. 70년대 초반의 군바리정권 분위기를 생각하면 어느정도는 짐작이 가지만, 이건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그야말로 '학살'이었다.
지금의 30-40대들이 지금도 가지고 있는 만화에 대한 왠지 모를 불량의 이미지, 만화는 결코 정통의 한 부분이 될 수 없다는 사이비의 느낌, 만화는 결코 소설과 같은 감동을 담아낼 수 없는 함량미달의 문화라는 선입견... 이런 것들은 아마도 당시 이 사건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가 보여줬던 그 수준 낮은 문화적 집단 히스테리를 뿌리로 한 것일게다.
그러한 인식은 거대한 장벽이 되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만화적 역량을 줄기차게 억눌러 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타고난 만화적 재능과 기질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 정말 만화적 재능은 뛰어나다) 세계시장에서 아직도 독자적 영역을 확보하지 못한채 외국 애니메이션 하청에만 매달리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그런 정신적 억압과 탄압의 결과가 뿌리내려져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 소년의 죽음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으나, 그 소년의 죽음으로 더 좋은 만화를 만들어내야 겠다는 사회적 합의와 보다 많은 투자가 이뤄져 우리 문화 역량 자체를 업그레이드 시켜야 하겠다는 결의를 하기 보다는 그저 만화 전체를 죽이는 것 밖에 생각해내지 못한 당시의 위정자들과 단세포 언론들, 그리고 지식인입네 하는 인간들은 오늘날 우리 만화가 이렇게 죽어 나자빠져 있는 것에 대한 총체적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일본과 미국이 만화로 엄청난 돈을 벌고, 그에 걸맞는 영향력의 문화 수출을 해내고, 또 그러한 만화적 상상력을 토대로 한 게임을 개발하여 천문학적인 규모의 시장을 형성시키고 있는 지금에 와서야 만화가 문화입네, 애니메이션이 산업입네 하고 지껄이고 있지만 문화가 어디 하루 아침에 성숙되는 것이던가.
(후략)
# by | 2009/11/16 18:22 | 참고자료 콘프로스트 | 트랙백 | 덧글(4)










